2008년 06월 11일
로마인 이야기 12, ‘위기로 치닫는 제국’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 중 '나의 로마 제국 쇠망사' 두 번째 권으로, 군인황제 셉티미우스 세베루스의 아들 카라칼라 황제부터 역사상 유례 없는 사태에 직면한 로마를 박진감 있게 그려내고 있다. '위기의 3세기'로 불리는 당대의 로마. 로마 제국에게 '위기'는 늘 있어왔던 상황이었지만, 당시 로마가 겪은 위기는 이전과는 본질적으로 달랐다고 저자는 말한다. 극복할 수 있는 위기와 없는 위기의 차이가 그것. 이때의 로마는 눈앞의 문제 해결에만 급급한 나머지, 자신들의 본질까지 놓아버리게 되고 그 결과, 이제껏 볼 수 없었던 매우 힘든 위기에 봉착하게 된다.
'위기의 3세기'에 이르기까지 로마는 제국의 판도를 최대한 넓힌 황제, 생을 마칠 때까지 제국을 순행하며 단속을 했던 황제 등 유례 없는 평화를 구가하고 있었으나 그 누구도 제국의 쇠퇴기에 대비해 '우산'을 준비하지 않았다. 그 결과 73년간 모두 22명의 황제가 채 1년의 임기도 채우지 못하고 사라져가게 된다. 과거에는 극복할 수 있었던 위기 왜 3세기부터는 극복하지 못했을까하는 의문이 저자의 상세한 서술에서 해명되고 있다.
211년부터 284년까지 73년 동안 로마의 모습은 다음과 같다.. 모두 22명의 황제가...
- 211~217
l 211년부터 284년까지 73년 동안 로마는 22명의 황제가 등장한다. 야만족의 불어난 인구수로 인해 약탈과 침략이 수시로 발생한다. 동방에는 파르티아가 무너지고, 사산조 페르시아가 들어서 로마의 동방을 위협한다. 설상가상으로 발레리아누스 황제가 페르시아에 잡히는 국난을 겪는다. 이에 외부의 적들이 동시에 쳐들어 온다. 안으로는 재정이 파탄 나고, 기독교 탄압에도 에너지가 소모된다. 잦은 전쟁으로 군인 황제 시대가 들어서고 제국이 분열된다. 다행히 아우렐리아누스의 노력으로 제국은 재통합되지만, 더 이상 예전의 로마를 돌이킬 수 없게 된다.
l 힘에 관여하지 않게 되면, 통치력도 사라진다. 루비콘 강을 건넌 뒤에는 힘차게 달릴 수밖에 없다.
l 철학이나 예술에서는 그리스인에게 미치지 못하고, 체력에서는 육식민족인 갈리아인이나 게르만인에게 뒤떨어지고, 기술력에서도 에크루리아인의 가르침을 받고서야 인프라 구축이 가능했고, 경제적 능력은 카르타고인이나 유대인에게 훨씬 미치치 못하는 라틴 민족이었지만, 그 로마인이 이런 민족들을 모두 산하에 넣은 대제국을 세우고, 게다가 오랫동안 그 제국읠 유지하는 게 성공한 것은 스스로의 힘을 합리적으로 철저히 활용하는 데 집착했기 때문이다. 이것이 진정한 성공 요인이다.
l 부모 앞에서 동생을 칼로 찔러 죽일 정도로 격렬한 성격을 타고난 카라칼라 황제는 가장 로마인답지 않은 정책으로 로마를 위기에 빠뜨린다. ‘국민 일치 체제’를 실현하고 싶었던 마음에서 속주민과 로마 시민의 경계를 없애는 법률 ‘안토니누스 칙령’을 제정했던 것이다. ‘로마 시민권’은 로마인들에게 있어서 제국을 종횡으로 누비고 있는 도로망처럼 새로운 인재를 사회에 공급해주는 피의 역할을 했던 제도였다. 출신 성분에 관계없이 누구나 의욕만 충분하면 획득할 수 있었기에 능력과 자질을 갖춘 인물들이 로마를 이끌어갈 수 있었던 힘이었다. 그러나 이제 노력하지 않아도 당연히 얻게 되는 권리가 되었고, 아무리 노력해도 신분이 낮은 사람은 평생 출세할 수 없게 되는 사회가 되었다. 로마 제국의 한 모퉁이가 이 법률로 결정적으로 무너지게 된다.
시오노의 냉철한 심정은 다음의 말에서도 들어난다.
“지도자는 좋은 시절을 최대한 오래 연장하기 위해서라도 냉철하고 세심하게 키를 잡아야 한다. 어쨌든 변해버린 뒤에 그것을 원래 상태로 되돌리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 by | 2008/06/11 16:40 | [Book Log] 로마인 이야기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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