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인 이야기 11, ‘종말의 시작’

'로마 제국의 쇠망은 오현제 시대의 종말과 함께 시작되었다'는 역사학자 에드먼드 기번의 사관은 오늘날에도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왜 뛰어난 철인 황제 시대에 제국은 몰락의 길을 걷게 되는가. 오현제 시대'의 마지막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부터 군인 황제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황제까지, 서서히 '머리'부터 썩어들기 시작하는 시오노 나나미판 '로마 제국 쇠망사'가 시작된다.

 

 

[목차]

 

1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

 

첫머리에/성장기/생가/어린 시절/소년 시절/성년식/제왕 교육/로마인의 철학/로마 제국의 안전보장 역사/차기 황제 마르쿠스/로마인의 하루/스승 프론토/결혼/어떤 의문/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두 명의 황제/황제 루키우스/기근과 홍수/동방의 전운/파르티아 전쟁/황제 출정/반격 개시/철인 황제의 정치/페스트/기독교도/게르마니아 전쟁/루키우스의 죽음/전쟁 개시/방위선이 뚫리다!/로마인과 야만족/시대의 변화/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원기둥/도나우 강 전선/전선기지/야만족의 도미노 현상/모반/장군 카시우스/뒤처리/세습 확립/2차 게르마니아 전쟁/죽음

 

2부 콤모두스 황제

 

영화와 역사/전쟁 종결/60년의 평화/인간 콤모두스/누나 루킬라/음모/처음 5년간/측근 정치/로마의 헤라클레스/암살

 

3부 내란의 시대

 

군단의 성공신화/페르티낙스 황제/제위 쟁탈전의 시작/로마 진군/수도 로마에서/경쟁자 알비누스/또 하나의 성공 신화/이수스 평원

 

4부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황제

 

군인황제/뜻밖의 결과/동방 원정, 그리고 그 결과/금의환향/브리타니아/죽음 

 

 

[책 속으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후세가 <명상록>이라고 부른 책을 한 권 남겼다. 그 덕분에 '철인 황제'라고 불리게 되지만, <명상록>이라는 제목으로도 알 수 있듯이 학문적으로 철학을 논한 저서는 아니다. 로마 황제인 그에게 야만족을 격파하는 것은 공적인 임무였고, <명상록>은 그런 공무를 수행하는 전쟁터에서 틈틈이 자신의 생각을 기록한 작은 책일 뿐이다. 다만 소년 시절부터 철학을 즐긴 사람답게 성찰과 사색이 가득 찬 책으로 알려져 있다. '고대인의 윤리를 드러낸 최상의 발로'이며 '고귀한 영혼의 진지한 외침'이라는 것이 근대 서양의 지식인들이 그 책에 바친 찬사였다. 플라톤도 철학자가 정치를 담당하는 것이 국가에는 이상적이라고 말했다. 이 말의 타당성에 대한 논의는 제쳐놓고, 계몽주의를 경험한 근현대의 지식인들에게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야말로 플라톤의 이상이 역사상 유일하게 실현된 사례로 여겨질 것이다.

 

- 인간이 공정하고 선량할 수 있느냐는 논쟁만 끝없이 되풀이하는 것은 용납되지 않는다. 공정하고 선량하게 행동하는 것만 요구되는 시대가 오고 있다.

 

이것이 대제국 로마를 다스린 최고권력자의 입에서 나온 '목소리'였다.--- pp 17~18

by 레지나 | 2008/06/11 16:37 | [Book Log] 로마인 이야기 | 트랙백 | 덧글(0)

로마인 이야기 10,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인프라를 '사람다운 생활을 하기 위해 필요한 대사업'으로 정의한 로마인들. 현대인으로부터 '인프라의 아버지'라고 불릴 정도로 인프라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을 공유하고 있던 로마의 인프라를 하드웨어적인 인프라와 소프트웨어적인 인프라로 나누어 종합적으로 다루고 있는 이 책은 워낙 광범위한 개념을 종합적으로 다루고 있어 저자가 직접 '단단히 각오'하라고 할 정도로 만만하게 읽히지는 않을 것이다.

 

[목차]

1. 하드 인프라

가도 / 다리 / 가도를 이용한 사람들 / 수도

 

2. 소프트 인프라

의료 / 교육

 

[책 속으로]

 

'팍스 로마나'는 로마인이 실현한 가장 중요한 인프라였다고 나는 생각한다. '팍스 로마나'는 결코 적국이나 야만족의 습격에서 로마 제국을 지키는 것만은 아니었다. '로마에 의한 평화'는 세 종류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첫째, 국경 밖의 적으로부터 로마 제국과 거기에 사는 사람들을 지키는 것. 로마의 안전보장을 담당하는 로마 군단의 기지는 국경선에 배치되어 있거나 아니면 국경선으로 쉽게 달려갈 수 있는 곳에 자리잡고 있다. 변경에 근무하는 병사들이 로마군의 주력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다.

 

둘째, 제국의 내분을 수습하는 것. 국내 분쟁도 수습할 수 있어야만 비로소 '팍스 로마나'가 확립된다고 로마인 자신이 생각하고 있었다. 로마는 제정으로 바뀌기 오래 전부터 이미 다민족 · 다종교 · 다문화 국가였다. 다양한 민족과 문화의 복합체를, 로마의 위정자들은 안전보장, 가도망, 우편제도, 수도와 공중 목욕장 정비, 위생 중시, 로마법 등의 '문명'을 보급하는 동시에 각 민족의 고유한 '문화'를 용인하는 방식으로 통치했다.

 

'팍스 로마나'의 세번째 요소는 치안이었다. 이것은 로마인의 현실적 성향을 무엇보다 잘 나타내고 있다. 국경 방위는 군단의 임무이고 국내를 안정시키는 것이 정부의 임무라면, 치안의 경찰의 임무다. 공공의 안전을 보장하는 경찰제도를 창설한 것은 초대 황제인 아우구스투스지만, 이것을 제국 규모로 확대하고 더욱 철저히 보강한 것은 제2대 황제인 티베리우스였다. 이 사람은 질서가 없는 곳에는 자유도 없다고 확신한 것 같다. 치안은 외적을 막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인프라임을 알고 있었던 게 분명하다.--- pp.114-115

 

 

이제는 나 같은 그리스인도, 아니 다른 어느 민족도 가고 싶은 곳은 어디든지 마음대로 갈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신분증명서를 신청할 필요도 없이, 자유롭고 안전하게 원하는 곳으로 여행할 수 있다. 로마 시민권 소유자라는 것만으로 충분해졌다. 아니, 구태여 로마 시민일 필요도 없다. 로마의 패권 아래서 함께 사는 사람이라는 것만으로도 자유와 안전이 보장된다.

 

일찍이 호메로스는 노래했다. 지상은 만인의 것이라고. 로마는 시인의 이 꿈을 구현했다. 당신들 로마인은 산하에 들어온 모든 땅을 측량하고 기록했다. 그리고 그후에도 하천에는 다리를 놓고, 평지는 물론 산지에도 가도를 건설하여, 제국의 어느 지방에 살든 쉽게 왕래할 수 있도록 정비했다. 게다가 제국 전역의 안정을 위한 방위체제를 확립하고, 인종과 민족이 달라도 함께 살아가기 위한 법률을 정비했다. 이런 모든 일을 통하여 당신들 로마인은 로마 시민이 아닌 자들에게도 질서 있고 안정된 사회에 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가르쳐 주었다.(p. 215f.)

- A.D 143. 그리스인 철학자 아리스티데스--- p.215

 

 

사회는 어떤 하나의 사고방식으로 통일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권력을 손아귀에 넣자마자 무엇보다도 우선 교육과 복지를 자기들 생각에 따라 다시 조직하는 문제를 생각하고 실행하는 법이다. 로마 제국의 국교가 된 뒤 기독교회가 한 일도 바로 그것이었다. 그로부터 반세기 뒤, 로마제국은 멸망했다.

 

남은 것은 기독교 제국이라고 말하는 편이 적절한 비잔틴 제국이었다. 로마 제국의 동방에 있었던 아테네의 '아카데메이아'도 알렉산드리아의 '무세이온'도 곧 폐교된다. 의심을 품는 것이 연구의 기본인데, 세상은 '믿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의 일색이 되었기 때문이다.--- p.332

 

 

로마가도는 주된 목적이 군사용이었기 때문에 군단병을 건설공사에 동원했고 그래서 공사비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은 반면, 수도공사는 건설회사가 입찰을 통해 도급을 맡았기 때문에 수도 건설비에 대해서는 몇가지 사료가 남아있다. 박물지를 쓴 대 플리니우스가 남긴 기록에 따르면 클라디우스 수도와 새라니오 수도의 총건설비는 3 5천만 세스테르티우스였다고 한다. 클라디우스 수도는 69km 새 아니오 수도는 87km가 되는 거리에 수도간을 놓는 공사였다.--- p.257

 

 

로마 가도와 더불어 로마의 인프라를 대표하는 수도를 총괄한 저서를 남긴 프론티누스는 그 자신이 토목기사였던 맡큼 기술자만이 할 만한 말을 남겼다.

 

'그리스의 미술품은 아름답기로 유명하지만, 일상생활에는 전혀 쓸모가 없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pp.62-63

 

 

오늘날에도 선진국에는 도로와 철도가 완비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인프라의 중요성을 잊고 살 수 있다. 하지만 다른 나라들에서는 그것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에 오히려 인프라의 중요성을 절실히 깨닫게 된다. 세상에는 아직도 충분한 물을 공급받지 못하고 있는 사람이 많은 게 현실이다. 왜 그럴까?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기 때문일까. 아니면 인프라 정비를 필수불가결한 일로 생각하는 마음가짐이 부족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것을 실행하는 데 필요한 강한 정치적 의지가 부족해서 일까. 그것도 아니면 '평화'의 지속의 보장되지 않기 때문일까.--- p.336

 

 

가정내 의료의 담당자는 가부장이었다. 로마의 가부장은 아주 강한 가장권을 갖고 있었지만, 책임도 다양하고 무거웠다. 가장은 가족만이 아니라 집안이나 농장에서 일하는 노예들의 건강 상태까지 책임지고 있었다. 이런 로마에서 의술서보다 약초의 종류와 그 효능을 다룬 책이 먼저 보급된 것은 각 가정의 가부장이라는 독자층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환자를 치료하는 가장은 그 집에 딸린 영리한 노예를 조수로 부린다. 노예는 치료를 도우면서 배운다. 이리하여 '노예 의사'라고 불리는 가정의가 탄생했다.

 

의료가 '가부장'(파테르 파밀리아스)의 역할이었던 시대가 오래 지속된 것은 가장이 의사 노릇을 해도 별로 지장이 없었기 때문이다. '의학의 아버지'로 존경받는 히포크라테스의 의학도 본질적으로는 예방의학의 집대성이고, 신체의 저항력 강화를 목적으로 삼는다. 그러려면 건강에 좋은 음식과 적당한 노동, 충분한 수면과 위생이 보장되어야 하는데, 이런 것들은 가장이 늘 주의를 기울이며 감독하는 사항이기도 했다.

 

가정이나 농장에서 일하는 노예들의 건강에도 늘 신경을 쓰는 것이 가부장의 본분으로 여겨진 것은, 인권을 존중했기 때문이 아니라 노동력 손실을 막기 위한 배려에 불과했다. 그래도 어쨌든 고대 로마에서는 노예도 의료 대상이 되어 있었다.--- p.286

 

by 레지나 | 2008/06/11 16:36 | [Book Log] 로마인 이야기 | 트랙백(1) | 덧글(1)

로마인 이야기 9, ‘현제의 세기’

로마인 이야기 9번째 권. 로마를 건국한 로물루스를 시작으로, 1993년 발간된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의 9 '현제의 세기` . 로마 제국의 판도를 최대로 넓힌 정면돌파형 인물 트라야누스, 제국 전역을 순행하며 통치체제를 재구축한 하드리아누스, 온화한 인품과 덕행으로 개혁을 정착시킨 안토니누스 피우스. 후세는 왜 그들을 현제라 하였으며, 동시대 로마인들은 왜 이 시기를 황금 시대라 불렀는가. 시오노의 펜끝에서 되살아나는 걸출했던 세 남자의 '리더십'이야기이다.

 

1. 트라아누스 황제

2. 하드리아누스 황제

3. 안토니누스 피우스 황제

 

 

[책 속으로]

 

후세인들은 과연 로마인을 기억해줄까요. 기억될 만한 가치가 로마인한테도 조금은 있을 것 같은데 말입니다. 로마인의 천분 때문이라고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면 너무 오만합니다. 그러니까 로마인의 부지런함, 로마인의 열성, 로마인의 명예심 때문이라고 말하겠습니다. 이런 덕목을 가슴에 품고 열심히 노력하는게 인생이지만, 그중에서도 소수의 사람들은 빛나는 명성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나머지 대다수 사람도 최소한 무명이나 망각에서 구원받을 정도의 가치는 있다고 생각하는데 어떨까요.--- pp.172-173

 

 

후세는 네르바가 제위에 오른 서기 96년부터 트라야누스, 하드리아누스, 안토니우스 피우스를 거쳐 서기 180년에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사망할 때까지를 '오현제 시대'라고 부르게 되지만, 동시대의 로마인들은 '황금시대'라고 부렀다. 그리고 진정한 의미에서 황금이라는 수식어를 붙일 만하다고 평가한 세황제에게는 각각 다음과 같은 수식어구를 바쳤다. 황제의 이름이 책의 제목이라면, 이 수식어구는 부제 같은 느낌을 준다. 트라야누스- '지고의 황제' 하드리아누스- '로마의 평화와 제국의 영원' 안토니누스 피우스-'질서있는 평온'--- p.423

 

 

황제란 공복 중의 공복이라고 믿은 안토니누스인 만큼, 무엇을 하느냐만이 아니라 어떻게 하느냐에서도 남의 모범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해야 할 일은 선대의 두 황제가 거의 다 해주었기 때문에, 그 뒤를 이은 안토니누스는 어떻게 하느냐에만 전념하면 되었다. 안토니누스에 따르면 일은 철저하고 명쾌하고 간략하게 해야 하고, 공정성과 투명성이 절대적인 조건이었다. 연고나 정실로 친지나 친구들을 등용하는 것은 되도록 피했다. 친구나 친지를 자신과 동등하게 대했고, 그래서 상대들도 지나치게 황제에게 의존해서는 안되었다.--- p.439

 

 

최고권력자의 지위에 오르면, 대개는 측근을 비롯한 협력자를 교체한다. 하지만 안토니누스는 그렇지 않았다. 본국 이탈리아에 상주해 있는 유일한 군사력인 근위대 대장에는 황제의 심복을 임명하는 것이 보통인데 그 자리도 교체하지 않았으니까, 하드리아누스의 인사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도 이 정도면 정말 철저하다.근위대장은 그 후에도 무려 20년 동안이나 자리를 유지했고, 이제 그만 은퇴하고 싶다고 자청한 뒤에야 겨우 안토니누스가 고른 사람으로 교체되었다고 한다.

 

하드리아누스의 인사는 철저한 적재적소 위주였고, 게다가 그것이 충분히 기능을 발휘하고 있었기 때문이지만, 안토니누스에게도 나름대로 인간관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사람은 오랫동안 한 가지 일을 맡기면 그 일을 잘하게 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그리고 나름의 생각을 관철한다는 점에서는 안토니누스도 상당한 고집쟁이였다.

 

하루는 아내인 파우스티나가 남편의 인색함을 불평했다.그러자 황제는 이런 말로 아내를 나무랐다. '당신도 참 어리석군. 제국의 주인이 된 지금은 전에 가졌던 것조차 우리의 것이 아니오.' 어쨌든 이런 말도 하는 사람이다. '국가 소유로 돌려야 할 재산을 필요하지도 않은데 소비하는 것만큼 비열한 행위는 없다.--- p.427,8

 

 

'진심으로 성실하게 황제의 책무를 수행한 것이 20년 동안 로마 제국을 다스린 트라야누스였다'

 

'1800년 뒤의 한 연구자는 하드리아누스를 이렇게 평했다.'속주민들이 로마로 대표를 보내 자신들의 요구사항을 호소한 것이 아니라 황제가 친히 속주를 돌아다니며 속주민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이 평가야 말로 하드리아누스의 묘비명에 가장 어울리는 찬사가 아니었을까.'

 

'같은 로마 황제지만, 투라야누스와 하드리아누스는 통치자로서 치세를 맞쳤고, 안토니누스 피우스는 아버지 역할로 일관했다. 마르쿠스 아우엘리우스가 묘사한 안토니누스는 그야말로 이상적인 아버지의 상이 아닌가.'--- p.210. ---p. 420. ---p.453.

 

 

오늘날 '황제들의 포룸'이라고 불리는 이 일대가 포로 로마노와 함께 제국 통치의 중추적 기능을 맡게 된 것은 공화정 말기에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확장 공사를 한 뒤였다. 공화정 시대에 국가의 중추기관은 아이밀리우스 회당과 원로원을 북쪽 가장자리로 하는 포로 로마노뿐이었다.

 

카이사르는 우선 원로원 회의장을 재건한다. 그리고 그 북쪽에 '카이사르 포롬'을 지었다. 원로원과 아이밀리우스 회당 사이의 길은 수부라라고 불린 서민층 주거지역과도 통해 있었다.

 

라틴어의 영향을 받지 않은 언어로는 어떻게 번역해야 좋을지 모르는 '포룸'이라는 명칭을 사전에서는 "고대 로마의 도시 한복판에 있었던 대광장으로, 정치. 경제. 사법의 중심이며, 상거래나 재판이나 민회에도 이용되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말하자면 공공광장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그 뜻을 확대하여 단순한 대화의 마당도 '포룸'이라고 부른다. 위의 설명에도 나와 있듯이, 포로 로마노에는 정치가 이루어지는 원로원 회의장(쿠리아), 재판과 상거래에 이용되는 회당(바실리카), 지하에 국고가 보관되어 있었던 신전(템플룸), 집회를 위한 연단(로스트룸), 그리고 장식품 역할도 맡고 있는 개선문이나 승전기념비가 세워져 있었다. 따라서 시민들이 무슨 일만 있으면 모이는 장소였다.

 

카이사르가 창안했고 따라서 로마의 독자적 건축양식이 된 '포룸'은 포로 로마노가 갖고 있던 이런 기능들을 한 곳에 모은 것이었다. 기본형은 직사각형이다. 한쪽 변에는 신전이 놓이고, 지붕을 씌우고 이중으로 기둥을 세운 회랑이 나머지 세 변을 둘러싼다. 회랑 안쪽에는 상거래를 위한 사무실이나 점포들이 늘어선다. 학원 형태의 학교로 이용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신전과 회랑으로 둘러싸인 내부는 광장이고, 광장 한복판에는 이 포룸을 만든 사람의 기마상이 세워진다. 신전 앞 계단은 광장에 모인 군중에게 연설하는 연단이 되기도 한다.--- p.140-141

by 레지나 | 2008/06/11 16:33 | [Book Log] 로마인 이야기 | 트랙백(1) | 덧글(0)

로마인 이야기 8, ‘위기와 극복’

네로 황제가 죽은 뒤에 터지는 피로 피를 씻는 내란! 1년 사이에, 세 황제가 피살되는 극심한 혼란이 야기된다. 이를 틈타 제국 변경에서 로마의 심장부를 노리는 유대족, 갈리아족, 게르만족과 베스파시아누스 간의 운명을 건 대격돌이 전개되는데....

 

1. 갈바 황제

2. 오토 황제

3. 비텔리우스 황제

4. 제국의 변경에서는

5. 베스파시아누스 황제

6. 티투스 황제

7. 도미티아누스 황제

8. 네르바 황제

 

인간은 자기가 사는 시대의 위기를 다른 어느 시대의 위기보다 가혹하게 느끼는 성향이 있다. 이 사건들은 그 하나하나가 당대의 로마인이 그대로 짓눌려 쇠퇴의 길을 걷느냐, 아니면 이겨내고 재기의 길을 걷게 되는냐 하는 선택을 강요하는 '위기'였다.--- 뒷면표지에서

by 레지나 | 2008/06/11 16:31 | [Book Log] 로마인 이야기 | 트랙백 | 덧글(0)

로마인 이야기 7, ‘악명높은 황제들’

로마인 이야기 7번째 권. 로마를 건국한 로물루스를 시작으로, 1993년 발간된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의 7 `악명 높은 황제들` . 지도력 부재의 로마제국에 재해와 식량난 등이 겹친 위기시대의 티베리우스, 칼리쿨라,클라우디우스, 네로 네 형제의 업적과 치부를 다루고 있다.

 

아우구스투스의 유산을 물려받은 네 명의 황제 티베리우스,칼리굴라, 클라우디우스,네로.. 많은 역사가들은 이들을 악명높은 황제들이라 낙인찍었으나 그들 제국의 나날은 영광의 깃발을 드높였다. 대혼란의 금융위기, 대형재해, 식량난. 제국의 운명마저 삼킬지 모르는 반란. 황제의 양어깨는 무겁다. 로마사에 던져진 그들의 죄과도 빛나는 위업도 단지 황제의 흉상에 새겨진 동전의 양면을 따름이다. 망하든 흉하든 대제국의 운명은 어차피 그들의 것이었다.--- 머릿말

 

네로는 문제를 시급히 해결해야 할 경우에는 극단적인 해결책밖에생각해내지 못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그 자신의 성격이 본질적으로 나약 했기 때문이 아닐까 하고 나는 생각한다.p.491

 

나쁜 짓을 해야하는 경우에는 단숨에 해치워야 한다고 마키아벨리도 말했다.여기서 이상주의는 배제한다. 이것이 인간성의 현실이라면, 악행에 따른 폐해를 어떻게 줄일것인가에도 인간의 지혜를 발휘할 여지는 있다. p.503

 

유능한 지도자란 인명과 노력과 시간을 절약하는데 능한 사람을 말하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p540--- p.

 

근대와 현대의 역사 연구자들이 티베리우세를 복권시키는 경향을 보이고 있는 것은 1 800년이나 지난 뒤에 사람들의 사고방식이 변했기 때문이 아니라 고고학이 발전한 덕택이다. 종래에는 고대 역사가의 저술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지만, 이제는 과거의 로마 제국 전역에서 발굴된 수많은 금석문과 그밖의 사료들을 참고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것을 독일인답게 철저히 실행한 사람이 19세기의 역사가 몸젠이었다. 몸젠은 역사 저술로 노벨 문학상까지 받은 사람이다. 이 몸젠이 티베리우세에 대해 내린 평가는 '로마가 가졌던 가장 훌륭한 황제 가운데 한사람' 이라는 것이었다.--- p.223

by 레지나 | 2008/06/11 16:30 | [Book Log] 로마인 이야기 | 트랙백(1)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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